영화이야기 1. 데어 윌비 블러드 사장으로써 , 형으로써 그리고 가장으로써
아무도 궁금해하지않을만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는건 언제나 두렵고 힘든일인거 같습니다.
제 글에 역할이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나
제가 몇 안되게 봤던 작품들 중에서 간추려 간추려서 저만의 방식으로 추천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시작해봅니다.
가능하면 영화뿐만아니라 그래픽노블 , 소설도 같이 소개해볼까하는데요
같이 즐겨주시는분들이 계시다면 실례를 무릎쓰고 계속 이어나가볼까 합니다.
폴 토머스 엔더슨의 2008년작 데어 윌비블러드는 제가 봤던 PTA의 4개의 영화 (부기나이트 , 데어 윌비 블러드 , 마스터 , 팬텀스레드) 중에서도 가장 담백한 영화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그만큼 다른 영화에 비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노골적이고 분명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PTA의 영화에서 가장 큰 특징이라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가족입니다.
부가나이트에서 소년이 사회로 나오게되는 이야기를 했던 PTA가 이 영화에선 홀로서는 젊은 어른 남성이 사회적인 큰 성공을 이루면서 동시에 가장으로서 겪게되는 크고작은일을 이야기 하게됩니다.
이 영화가 "왜 봐야될정도로 특별한데" 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나는
영화이기에만 표현될법한 장면들이라 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지금도 인상에 남는 장면은 대니얼 플레인뷰의 아들이 아버지가 잠자고있는 틈에 집을 불태워버리는 장면입니다.
아직도 생생할정도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라는 매체가 갖고있는 표현방식안에서 움직이는 사람과 시선 , 뒤에 따라오는 배경음악 그리고 사람이기에 가질수있는 공감할수있는 감정의 표현이 왜 이 이야기를 영화로만 표현해야됬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이였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미 아들을 신경쓰기엔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낸 아버지와 방안에서 소리없는 슬픔과 원망을 가득 품은 아들의 분노가 서로 부딛히는 장면은 보면서 글이나 그림으로 설명해도 이정도로 애달프고 뜨거울수있는가 질문을 던져보았을때
역시 PTA가 영화로 표현한게 가장 아름다웠다라고 느끼게 만들었던 장면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그 상황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들에게 망설임없이 폭력을 행했던 대니얼 플레인뷰가 아들에게 손지검한번하지않고 지나갔다는것또한 묘한 느낌을 받게 했었죠.
단순히 외적인 부분만 이야기를 하자면 가족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부여받은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주변에 경쟁자들과 훼방꾼들을 밀쳐내며 사업을 성사시켜야하는 사장으로서의 두개의 선이 부딛히는 과정에서
결국 사업가로서의 자신에 추를 기울였고 그로인해 아이가 다치고 아이와 점점 멀어지게 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미 영화 시작에 죽은 인부의 아이를 데려온 플레인뷰를 보면서 저게 그 당시 미국의 정서인가 의심하면서 보았었는데요.
아마 지금으로써 드는 생각은 그 당시 굉장히 극단적이고 어려운 환경속에 놓인 플레인뷰의 오묘한 심정이 아이와 함께 동행하게되는 계기가 되지않았을까 싶습니다.
영화에 끝에서 아이는 아버지를 받아들이며 플레인뷰가 행했던거와 똑같이 밖으로 나가서 자신만의 사업을 차리고 아내와 함께 출가를 선언을 하게되는데 플레인뷰는 그곳에 폭언을 퍼붓죠
굉장히 오묘한 장면이라고 느꼈습니다.
결국 플레인뷰라는 인간의 흔적이 양아들에게도 묻어났고 아버지가 걸었던길을 똑같이 걷겠다는 선언을 하는 장면이였으니까요.
플레인뷰의 심정이 어떠하였든 결국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라는 거름을 토대로 세상에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서게 되는겁니다.
영화를 보면 알수있듯이 플레인뷰는 따로 가족과 만나는 일없이 거의 대부분을 혼자 혹은 아들과 함께 지내죠
이후에 먼 동생이라고 찾아온 사람조차 친동생이 아닐뿐더러 거짓말로 자신에게 신임을 얻고 역할을 부여받은 이기적인 인물로 묘사되구요.
심지어 어린 아들은 자신의 귀가 멀게하고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플레인뷰를 죽이려고까지 하죠 (다른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해보니 사업파트너가 삼촌으로 바뀐것에 대한 분노라고 이야기 해주시는 글들도 있었는데 이또한 맞는 해석이라고 느꼈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광활한 개척지를 소개시켜준 소년의 형은 언제나 자신에게 돈과 시간을 요구하며 옥죄여오며 괴롭히죠.
사업가로서의 성공과 별개로 주변에게서 믿음과 신뢰를 잃어가는 환경에 플레인뷰의 신경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잔인하게 변합니다.
좋은 이야기는 인물이 행하는 악행조차도 설득을 시켜버리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저정도 상황까지 가면 어쩔수 없을거같단 느낌을 받게 하는겁니다.
그 예시가 조커라는 영화가 주는 이미지겠죠.
누가봐도 악인인 조커의 행동에 보는이들은 어찌보면 통쾌함을 나아가 이 사람은 어디까지 뻗어나갈까에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게됩니다.
플레인뷰는 점점 더 극단적으로 주변환경에 몰입하게 되고 행동하며 동시에 주변환경에 녹아들게 됩니다.
그렇게 더 강한 남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죠.
PTA의 영화에서 특히나 남성으로써 가장으로써 인물이 갖고있는 고뇌는 외적으로 하여금 영화내에 인물들에게 또한 관객에게도 불편함을 심어주는 역할을 종종하곤 합니다.
플레인뷰 또한 살갑게 다가오며 주변 눈치를 살피며 위협이 될만한 상황을 피하는 주변인들과 달리 본인은 끝없이 주변인들을 매몰차게 행동하고 무례하고 잔인하게 몰아세웁니다.
그러나 결국엔 플레인뷰는 가능한 멀리하고싶었던 교회에가 죽도록 두들겨 패줬던 소년에게 공개된 자리에서 갖은 모욕을 받아가며 지역사회의 신임을 얻으려고 하죠.
그런식으로 이복동생을 자신을 위협하는 숙적을 그리고 잠시동안 자신의 아들까지 정리해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우리는 플레인뷰의 행동에 대해서 묘한 납득을 받게 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최대한 제가 영화를 보는 시선을 위주로 가볍게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보는분들에게 어떤식으로 받아들여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보았던것들중 인상깊었던 작품들 위주로 이렇게 글을 남겨볼까 하는데요.
후에 제 티스토리를 즐겨주시는 분들이 제 글을 읽고 좋은 작품들 건져갔다는 느낌받을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